변역일기 6, 7월호 (1) - 상반기

월드컵 스페셜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합쳐서 써본다.

작년의 경우, 4, 5월까지는 예년과 다름 없는 페이스가 진행되다가 중반부터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그리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은 탓도 있으나 하락세가 눈에 두드러져 큰 걱정이 되었다.

올해 상반기 6월까지 결산하여 비교해보니 다시 예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영상 번역을 올해는 하나도 안 하였으니 사실 그 내용 면에서는 작년을 상회하는 수준이고 2016 수준으로는 돌아갔다고 볼 수 있어서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직 그 원인을 알 수는 없겠으나 지난해 8, 9월 접어들면서 포스트에딧이란 개념이 한국어에도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기계번역이 일취월장한 탓인 것으로만 알았다. 게다가 나의 주종목인 금융번역이 많았던 한 곳에서는 일이 급감하였다. 며칠 전 블로그에 올렸던 M&A의 희생자였다. 포춘 500에서 금융번역 회사로 분사된 후, 혼란을 겪다가 결국 sdl에 합병되었다는 그 회사였다. 포천 500 기업이 번역 비즈니스에서 먹을 게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라 하겠다. 아울러 또 하나의 훌륭한 부티크 번역회사도 클라우드 번역회사를 표방하는 저가 스타트업에 먹혔다.

자,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어느 정도 클라우드 회사의 시스템에 적응해 가면서 단가는 "거의" 희생하지 않으면서(이전에 워낙 제대로 받았으니까) 일감이 오히려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최소한 5, 6, 7월에는). 그래서 여기서는 이래 저래 똔똔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포스트에딧과 풀 번역의 옵션을 고객에게 주는 것으로 안다. 따라서 분명 고객의 기대치도 다를 것이므로 포스트에딧은 더 적당하게 해도 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겠다. 이 시스템은 아예 대놓고 구글번역을 타깃 세그먼트에 보여주는데, 사실 요즘 기계번역 수준이 그 주제에 따라 수준이 매우 높기에 기존 번역에서 단가를 할인하여 들어가도 무방한 수준에 이르렀다. 즉 시간당 임금 면에서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랜 만에 큰 일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작년의 정세가 글로벌 시장에서의 한국어 번역물에 약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는 거의 드물었던 대형 프로젝트가 눈에 띄게 늘은 것으로 보인다. 탄핵으로 인해 국민연금은 사람들 줄줄이 잡혀 들어가니 금융업계 전반에 미친 영향을 지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북한의 미사일 놀이, 트럼프의 입 미사일포로 인하여 해외 금융회사의 지사 또한 고용이니 이런 것 다 잠가버렸다는 얘기도 간접적으로 듣고 있으니...

올해 초 올림픽 뚤리면서 1월 한 달 장사 톡톡히 하였고, 3, 4월부터 단가 문제로 일 없던 곳에서 문제 터진 문건들이 슬슬 오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신규 고객이 없되 물량이 적었던 쪽에서의 물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주요 고객 에이전시에서의 감소 부분을 메꿔줬다. 사실 몇 년째 proz니 translators cafe니 이런 곳들에서는 고객을 건지지 못하고 있다. 사실 볼 필요도 없었고... 초기에나 활용했고 언제부터인가는 안 보다가 가끔 시장 동향 판단 차원에서 받아보고 있다.

얘기가 잠깐 이야기가 새지만... 내가 입찰하는 항목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1. best rate를 달라.
2. 인도, 중국 등 한국보다 gdp 낮은 국가
3. large volume이다
이런 건 개무시한다.
사실 위의 1,2,3은 보통 패키지로 나온다.
그리고 워낙 쉬운 것 같은 번역은 단가가 낮으므로 아예 무시한다.

주종목 법륲이나 특수한 부문... 주로 금융에만 보낸다.
과거에는 고객이 보고 직접 연락 오는 건들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손님을 늘렸다.
따라서 주로 금융번역이나 중요한 문건에 비딩을 들어가는데 금융번역조차도 가격 논의 과정에서 뻑난다. 올해 유일하게 이런 식으로 잡은 건은 앞서 언급한 올림픽 관련 번역이었다. 이전 번역가가 말아먹어서 고객 쪽에서 시급하게 번역가를 찾은 덕분이었다.

자 다시 전체적인 그림으로 돌아가서...
단가 고수의 이야기렸다. 올해 역시 단가 유지하느라 일감 많이 버렸다. 아무튼 상반기에 나름 경험한 것은...

1) 에이전시 A
에이전시 측 손님이 매우 고급임에도 불구하고... 저가로 유명한 공장번역 회사인지라 한 2년간 전무했던 회사에서 사고 난 건으로 나를 3, 4, 5월에 매우 바쁘게 해줬다. 굴지의 IT 회사 문건인데 개죽을 만들어 놓아 회사 측이 문제 삼으면서 나한테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줄곧 나에게 들어오고 있다. 여전히 물량이 내가 충성할 정도는 아니나... 이 회사 일감만 충실히 들어와도 만족할 것이다. 작년 10월에 시작해서 한번 땜빵하고 또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으니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회사 문건은 50원, 60원 저가 번역으로 해결할 문건이 아니다. 그 문건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의 소유자가 그 돈 받고 일할 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만일에 이 가격에 이 문건을 받고 거기에 맞춰 번역을 한다면 사고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임금을 희생하거나 아니면 언젠가 까일 각오로 대충 대충 해서 보내는 것인데(가뜩이나 대충 하는 상황에서) 그건 자칫하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에이전시 B
위에 언급한 입찰식 클라우드 에이전시의 건이다. 아주 훌륭한, 그러니까 10일 이내에 결제해주고, 번역물도 예쁘게 워드에 따서 글로서리까지 포함하여 보내주던 나를 번역에 입문시켜줬던 번역가를 위한 번역가에 의한 에이전시가 클라우드 번역 에이전시에 합병되면서 사실 큰 충격을 받았다. 초창기에는 워낙 기분이 나쁘고 입찰 시스템도 못마땅하였는데... 일감이 꽤 되길래 나름 적응하였고 6, 7월에 상당한 소득을 거뒀다. 반드시 가격을 깎지 않고 물량을 따낼 수 있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는 시점이라 하겠다. 가격은 철저하게 고수하면서 미니멈 수수료가 적용되는 문건(오늘도 2단어 6$했다. 원래 10$를 적용하지만 주스 사 마시면 된다), 그리고 아예 큰 건을 집어 먹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다. 중간 건은 집어먹기가 어렵다. 아마도 큰 건은 속도 우위로 잡는 것 같다.

나의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단가를 악착같이 지키는 공장번역가로서의 작업 기류를 토대로 정리하자면 다음의 기류가 읽힌다.

1. 어느 정도 단가는 바닥을 쳤다.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다. 내 요율로는 새로운 일감 잡기가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2. 저가 번역에 따른 폐헤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곧 단가가 바닥을 쳤음을 나타내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올해 연초 유난히 사고 건이 많았고 연락 없던 저가 번역회사들의 의뢰가 늘었다. 나의 기존 고객 중에 요율 때문에 나한텐 일감이 없었던 기존 에이전시에서의 의뢰가 늘었다는 이야기다.
3. 포스트에딧은 생각보단 느리지만, 분명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 애초 나는 올 중반이면 대세가 될 것으로 알았으나... 아무튼 분명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으며, 언젠가는 팍 다가올 거다. 포스트에딧을 예의주시한다.

하반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사뭇 궁금하다. 긴장 많이 된다. 아마도 하반기는 상반기만 못할 것 같다.
회사 그만 두기 전 번역을 강구해놨듯이 백업 대책을 강구해 놓아야겠단 생각이 든지 1년 가까이 됐는데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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