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번역에 대한 대략의 고찰(까지는 아니지만)...
흠 이 사진 맘에 든다.
자, 1만 3천 단어짜리 작업을 한 소감을 한 번 적어보자.
100% 메치 꽤 있고 거의 정가 받았다.원문 54페이지다.번역 난이도는 90점은 되겠다. 결코 쉽지 않은 ICO 백서이다. 99%는 완벽하게 이해했고 군데군데 글을 못 써서 이해하기 힘든 문장 서넛 있어서 대충 뭉그러뜨려 번역한다. 내 책임이라기보다는 원작자의 책임이다.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로 대략 작성되었고 개인 프로필이 많아서 생각보다 빨리 1차 번역을 마무리했다. 30시간 목표로 했는데 28시간인가에 마쳤다.총 33시간. 처음에 버벅 거린 시간 (몸이 안 좋은 것도 한 몫했음)하지만 한 5분인가 놀면 닫히는 시간 카운트는 사실상 잔인하다. 아무튼 담배 피우고 돌아올 동안 돌아간 시간 따지면 실제 작업 시간이라고 보면 대충 맞겠다.
문제는 이때부터다11시에 마쳤는데 파일 다운로드해서 엉터리 검수하는데 3시까지 더 작업해서 대략 기록된 시간 32시간이다. 망할 클라우드 도구를 쓰니 가뜩이나 보기 어려운데 이건 워드 파일로 내려서 온라인에 수정해야 하고 워드파일로 업로드해야 한다. 이건 뭐 그리 어렵진 않다. 워드로 봐서 클라우드 캣툴에 수정한 다음에 다시 내리는 거다. 사실 나름 신경 써서 작업하였으나, 여전히 더블 스페이스 오류(내 시력 탓도 있겠으나 클라우드 캣툴은 스크린을 키우면 버튼 누르는 것들에 문제 생겨서 드럽다. 내 나이가 외국나이로도 얼추 베이비 부머 세대인데 젠장 UI는 갈수록 젊은 엔지니어들의 눈에 맞춰 개발된다. 이 정도 분량이면 검수 과정에서 잡아도 20-30개 나온다. 일일이 클라우드 캣툴로 돌아가 고쳐줘야 하는데 UI가 ㅈㄹ 후져서 시간 많이 걸린다. 족히 30-40분. 젠장 CTRL+H 기능 있는데 더블 스페이스 찾기 안 된다. 스페이스 하나짜리도 잡는다. 결국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다른 단어도 해봤는데 아직 한번 CTRL+H 성공 못해 봤다. 이러니 번역 작업이라고는 볼 수 없는 심부름꾼으로 전락하여 최소한 1시간 이상 낭비한다.
이제부터 내가 이 블로그 글을 쓰게 된 계기라 생각한다.
자, 이쯤되면 공장번역가로서 계산할 때다. 나의 시간당 임금을 계산할 때다. 나름 정성껏 33시간 소비한 후인데 이때부터 더 들어가는 시간은 나의 손해다. 난 열라 열심히 일했으니까... 게다가 PDF를 자기네들이 편집해서 올린 것이라 누락되는 부분, 세그먼팅이 잘못된 부분들이 상당수 있다. 내가 원본 파일까지 온라인에서 검색해서 찾았는데(서비스 잘해준다) 이건 이미지 파일이라 단어 찾기가 안 된다. 고로 워드 파일, 캣툴, PDF 파일 세 개 열어놓고 여기저기 오가느라 속탄다. 열어놓은 10여 개의 창 속에 ALT TAB 몇 번씩 때려야 찾는다.
아무튼 한 시간 걸려서 더블 스페이스 찾는다. 이쯤 되면 성깔 나서 워드 스펠 체킹 대충 한다. 약간 찝찝하다. 전체 골격은 괜찮으니 던지자. 감수자가 있는지 없는지 불확실하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쯤 되면 감수자 안 쓰면 회사와 에이전시 책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일해왔다.
공장번역가로서 이런 생각을 한다.
자, 이 글은 떼돈 투자받은 회사가 하는 일이다. 내부적으로 최소한 한 달은 걸려서 작성했을 문서이다.그리고 돈이 많이 연계된 비즈니스이다. 그리고 이 문건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자가 1억 이상 받는 사람일 거다. 프로필 봤으니까 최소한 그 정도는 된다.
그러하면 이 문건을 번역하는 사람도 최소한 비스꾸무리한 돈을 받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문건의 난이도, 중요도를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고로 내 인건비를 축내기 시작하는 순간, 공장번역가로서의 본성을 우리는 드러낼 필요가 있다. "적당히" 해주는 거다. 이 "적당히"가 통하지 않으면 번역가로서의 일을 접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 내가 이 블로그에서 줄창 얘기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자, 그렇다면 내가 과연 이 글을 원문의 수준만큼 번역해 주겠다고 하면, 그 실력이 되고, 글발이 되니까... 원문과 똑같이 쓸 자신이 있다.내가 만일 이 회사의 한국 대표여서 이 글을 내가 직접 번역했다면 몇 시간을 썼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지금 쓴 것만큼 시간을 더 쓸 거다. 다듬고, 뭐 하고... 내 마음에 드는 수준으로 닦어내려면 말이다. 즉 60시간 걸린다는 얘기다. 중간에 쉬어가면서 2주 반 정도에 마칠 거다.
그러나 공장 번역은 그러할 여유도 없고 그렇게 해주면 번역가가 아닌 허드레 일꾼으로 전락한다.
고로 내가 줄곧 말하는 "QUALITY"는 최소한 고난도 문서에서는 적용될 수가 없다.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다.
일본에서는 외국으로 유학 안 간다. 일본에서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예전부터 외국에 유학 안 갔다. 그것 중의 원인이 일본엔 번역된 책이 엄청나서이기도 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모시던 보스는 상당한 실력자이고 연세가 많으신데 다 일본책으로 읽으신다.
영화 오역 따질 때가 아니다. 국제법들은 과연 번역이 잘 되어 있을리 만무할 것 같다.
여러분들에게 "적당히"의 지혜를 알려드리고 싶다. 참으로 균형을 잘 찾아야 하는 부분이다. 번역가로 살아남느냐 그러지 못하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다.
아, 이번 작업을 하면서 나름 고찰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중요하고 난이도가 있는 고급 문건의 경우 적정 가격은 믿거나 말거나 ...
영한 기준을 단어당 150원이다.그러나 이 돈 주는 데 전 세계에 없다.어쩌면 직거래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ㅋㅋㅋ 따라서 일감 있으면 물량 보고 할인해줘서는 절대 안 되고, 골치 아픈 문건, 하지 마시라. 특히 마감 촉박하면... 차라리 일감이 어느 정도 있으면 다른 번역물 하는 게 낫다.
늘 말하지만 떼부자 되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많은 번역가가 위의 그림처럼 1:5인가 정도로 워라벨이 무너져 있지는 않을까? 그러니 열심히 "먼지나는 건 안 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임하는 것이 맞겠다. 뭐 캐치 프레이즈처럼 마냥 호사로운 얘기가 아니다.
얼마든지 더 상세히 쓸 수 있겠으나... 이만... 늘 그렇듯이 쭉 써 내려가는 글이 동료 번역가와 밥 먹으면서 나눈 대화라고 생각하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