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에 대하여

앞서 노회찬 님에 보내는 나름의 애도 글에 싫었던 "뻔뻔함"을 빗대어...

리듬이 또 바뀌어서 밤샘 작업하구...
2시쯤 뿅 작업 요청...
한영, 170자(단어 아님...), 자기네 예상 예산 40$. 보통이라면 짭짤하겠으나...
은행 거래내역서이고 pdf라 함. 내용 안 보여줌...

pdf 한영 드러움. 내가 번역가인지 비서인지 모를 정도로 비서 작업이 대부분임.
이럭저럭 한 시간 걸리겠으나 일도 많은데, 급하다 함.
에이 하기 싫어, 입찰 들어가 60$ 적음. 되면 좋고 아님 말구...

PO 날아와서 들어가서 보니 여전히 40$임, 그래서 "거부" 버튼 누르고 코멘트 칸에 "나 60$ 입찰했다. 급행이고 나 지금 바쁘다"라고 적어 보냄. 그리고 나서 메일박스 확인해 보니 PM이 이멜 보내놨음. "네가 이전에 한 작업과 같다. 60$ 주려면 내가 1시간 기다린 후 작업 배정해야 한다. 그래서 바로 40$로 PO 끊어서 보낸다"라는 이메일이었다(원래 다른 사람 주라고 내가 60$ 쓴 거야). 설명인 즉슨 이거임. 가격이 비싸니 그냥 40달러에 가져가면 자기가 다른 번역가가 받을 때까지 1시간 기다리는 내부 규칙이 있다는 이야기임.

아무튼 이미 거부한 터..

그런데 이메일 확인하는 도중 바로 새로운 PO 60$짜리가 날아옴. 급했음. 1시간 동안 답한 다른 번역가 없는 거임.

170글자지만 PDF 당근 이미지 파일인데, 다행히 다 영어이고 출납 대상(비고 칸)만 한글임. 이전 작업 때도 그랬지만, 내가 숫자 쳐서 엑셀 파일에 옮겨줄 이유 없길래, 간단히 워드로 PDF 파일 열어서 위에다 DRAW TEXTBOX 기능으로 박스 그려 놓고 출납 대상만 한글로 번역해줌. 되게 쉬움. 이자지급, 아파트 명, 전화비 이런 거임.그런데 이 놈의 박스 그려놓고 줄 맞추고 이러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님.
워낙 양이 적어서 1시간 안 걸린 듯.
.............
자, 어찌 보면 내가 무슨 甲혐주의자, 또는 깔때기 번역가처럼 오해받을 위험의 소지도 있겠으나...

어찌 보면 바캉스 시절에 두세 배 받는 걸로 오해가 될 수 있기에 별도로 설명함.
나의 바가지 요금이랄 수도 있으나 나름의 철학이 있음.

1. 일단 나의 적법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
즉, 나한테 시간당 8천원짜리 일 시키지 말아라. 난 비서 일 안 한다. 비서 일 시킬 거면 내 인건비 내고 시켜라, 아니면 너희 PM들이 PDF 예쁘게 CONVERSION해서 난 번역만 하면 되게 보내라.

2. 급하면 급행비 내라
나, 당신들 급할 때 대비해서 거의 24시간 CONNECTED다. 서비스 남 다르다. 그러니 좋은 서비스 사용하려면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난 당신의 노예가 아니다. 프리랜서다. 프리랜서가 정기적인 월급이 없다고 해서 짓밟으면 뭐 하러 프리랜서 하는가.

....

자, 이거 내가 두루 접한 국내 번역업계의 실상을 고려할 때 참으로 한가한 소리일 수도 있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길을 나설 때는 어차피 자기 사업 하는 거다. 임대료 없다고 자기 사업 아닌 것 아니다. 개인 사업자다. 흔히 프리랜서를 무슨 꿈의 직업인양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영업도 열심히 해야 하고 서비스도 좋아야 한다. 즉 목숨 걸고 해야 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더 열심히.
사업이니 갑의 횡포도 당연히 있다. 번역 카페들만 둘러봐도 한참 일 잘해줬는데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이러쿵저러쿵 빈정 상한다는 글도 많이 올라오고... 돈 떼먹고 잠적하는 인간들에... 게다가 기계번역에 뭐에 날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자. 위의 예나, 내가 블로그 곳곳에서 언급한 번역가로서의 "뻗대기", 제 맘대로 안 된다. 나도 100% 내 맘대로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거꾸로 100% 내 맘대로도 못하고 응당한 대가를 얻을 수 없으면 프리랜서 사업 망한 거다. 번역료 앞으로 절대 안 오른다. 줄곧 얘기하지만, 절은 사람들이 목 맬 일 절대 못 된다. 번역가 프리랜서로서 그 망한 시점을 아무리 좋게 평가하더라도 나는 단어당 40원으로 본다. (영상번역은 이미 프리랜서 번역가들 입장에선 망한 시장이다). 그런 판단을 하는 이유는 이 블로그 곳곳에 설명하였다. 내가 젊은 나이는 아니고 진짜 그들이 처한 실상을 제대로 모르겠으니 일방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겠으나 이것은 그냥 내 친구 아들이 나에게 와서 번역 일 어떻겠냐고 물으면 진심으로 그를 위해 해줄 말이다. 대안 있으시면 다른 길 찾으시라.

자, 뻔뻔함에 대하여...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나의 생게가 걸려 있는 문제다. 노조 싸우는 것 봐라. 재벌들 봐라.
비즈니스와 인간 관계를 섞지 말아야 한다. 뻔뻔하게 나오는 비즈니스 상대에겐 뻔뻔하게 대하라. 을이 되어서는 여러분 수도 없이 봐왔지만, 그 종말이 별루다.

번역 프리랜서 단가 끊임없이 깎여왔다. 조금 비싸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번역 에이전시 수두룩하다. 즉, 프리랜서는 매일 자를 수 있다. 프리랜서도 맘에 안 들면 에이전시 끊을 각오로 대비하고 일해야 한다. 그래서 사업인 거다. 그리고 그 사업이 망해 가면... 여느 망해 가는 사업과 마찬가지로 서둘러 접어야 한다. 그게 좋든 싫든 이 한계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수백 년 더 갈 수도 있겠으나)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현실이니...

생각보다 글이 비장하고 이모저모 맘에 안 든다. 대충... 대충이다... 양해하시라. 역시 친구와 밥 먹으면서 한 얘기라고 생각하고 본인의 노동 대가에 관해 새김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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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들, 뻔뻔해지시라... 이것도 사업이다. 이것도 일종의 컨설팅일지언데 조금의 뻔뻔함도 통하지 않으면 사업 접을 때다. 끊임없이 대안을 찾아야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다.

글 영 맘에 안 드나... 쓴 거니 아까워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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