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 문서 번역가의 세계: 번역가의 자세와 덕목
사이드바 "번역가"에 글을 올릴까 한다. 특별히 계획을 세우고 블로그를 쓰기 시작한 것도 아니어서, 올리는 내용들이 중구 난방이다.
사실 번역가의 요건, 이런 것들은 나무위키만 보아도 상당 부분 커버가 된다. 번역가가 작성한 내용 같지는 않으나 틀리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번역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며칠 전 서울대 경영대를 나오고 약사가 되었다가 생명공학 전문 번역가가 되신 분의 기사를 접한 바 있다. 이분이다. 많은 공감을 한다.
나 역시 다양한 배경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80까지 계속 번역하고 싶다.
이 정도면 자격증만 없다뿐이지 번역"사"급이다.이 정도의 신념은 가져야 번역사가 될 수 있다. 90% 이상은 그냥 번역가다. 그게 그건진 모르겠으나 나의 관점에서는 다르다. 이 분의 글에서 공감한 부분 하나를 짚고 넘어가겠다.
“ 하루 10시간을 투자해야, 전문서적 4~5페이지를 번역 할 수 있어요. 참고 논문 및 문헌 검토까지 필요한 지적 노동입니다. 한달 수입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결혼과 재테크를 생각하는 젊은 나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나도 다니던 외국계 회사가 경쟁력 부족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자 구직에 나서기보다는 원래 나의 커리어 출발점이었던 글쓰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니던 회사의 경쟁력이 아무래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아, (회사가 철수하기) 2년 전부터 외국 사이트에 이력서를 한 번 올려 놓았는데 어느날인가 나의 이력을 보고 블룸버그 파생상품 설명서를 요청하는 번역회사가 있었다. 안 된다면 안 하고 말지 15센트인가를 불렀는데 맡겼다. 당시 10시간이면 6천 단어를 할 수 있었으니 하루 100만원이었다. 요즘 같아선 상업 번역에서 15센트 부르면 미친놈 취급받을 일이겠으나... 아무튼 그 후 번역에도 돈이 되는 분야가 있구나 싶어 낮에는 회사를 다니며 유명 번역회사들에 이력서를 뿌려봤고 하나 둘 시험을 봐서 여러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워낙 속도 하나는 귀신인지라 어렵지 않게 소득을 올리게 되었고 재미도 있었다. 아무튼 회사를 철수하게 되던 해에 번역도 절정에 달해 진짜 잘 벌었다. 다들 들으면 놀랄 정도다. 당시 워낙 벌어서 오히려 회사를 그만 둔 후, 그 정점을 못 찍고 있다. 사실 50을 넘기면 외국회사 일자리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는 만만하지 않으며, 또 바쁜 회사에 들어가면 번역하기도 힘들고... 이 나이에 무슨 발 뻗을 일 있다고 새 회사 들어가 비위 맞추고 적응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 커리어의 황혼길에 기왕 번역도 닦아놓았고 체질에 맞는 번역을 스스럼없이 택하게 되었다.
기왕이면 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외국 서적 번역 족을 알아보았다. 나는 해외 특정 업계 관련 책도 한 권 낸 적이 있다. 와이어드 잡지에도 몇 달 기고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관두었고, 모 경제지에도 두어 번 실린 적 있다(안 찾아온다고 잘림). 그래서 번역서를 내더라도 출판 가능 품질의 서적을 내는 데 최소 석 달이 소요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 알아본 바로는 과거 경력이 없는 사람은 300만원 정도로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자식들이 대학 진학을 앞둔 마당에서 불가했다. 그래서 나는 전공 분야를 살려 상업적 번역가의 길을 선택했고 워낙 번역 일에 이골이 난 터여서(난 평생 번역가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왔다). 마침 번역가의 정신 자세랄까, 이 서재에 상업적 번역가의 길에 대해 설명하려던 차였는데 위에 소개한 선생님의 말과 비교하여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작성한다.
서론이 길어졌다.
아무튼 나는 상업 번역에서 대해 논의하고자 하며, 상업 번역가와 서적 출판 번역가의 덕목은 완전히 다르다. 그 차이점을 위의 양 번역사 님께서 올린 7가지 덕목과 비교하여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토를 다는 것이 아니라, 상업 번역과 장인 정신을 갖고 하는 전문 서적이나 문학 서적의 번역가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1. 번역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국어실력으로 하는 것이다.
상업 번역에서는 영어 실력이 7:3 정도로 더 중요하다. 물론 그 3에도 최소한의 수준이 있으나...
2. 읽히지 않는 번역은 번역이 아니다.
맞다, 그러나 출판 번역보다는 그 "읽힘"의 기준이 훨씬 낮다.
3. 사전(辭典)보다는 감(感)에 의지하라.
감으로 한다고 함은 검색 과정에 그럴 것이다. 이 부분은 기자가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
4. 원문에 오류가 있으면 당연히 고쳐야 한다.
이건 너무 당연하다. 상업번역에선 더 중요할 거다. 자주는 아니지만, 흔히 한다
5. 과학 번역은 해석이 아니라 해설이다.
과학 쪽은 문외한이라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6. 최고의 번역은 번역한 티가 안 나게 하는 것이다(天衣無縫).
당연하다. 그러나 솔직히 아직 그런 글 못 봤다. 특히 상업적 번역에서는 최대한 번역한 티가 안 나게 하면 된다.
7. 책 한 권을 번역한 후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 업종의 문서 번역을 많이 하다 보면 1년 쯤 되면 전문가 행세는 따라온다.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도 기본 지식이 있는 경우다.
그러면 여기서 문서 번역가와 출판 번역가의 차이점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바로 번역의 "품질"이다.
춮판은 품질의 측면에서 차에 비유하자면 포뮬라 1이다. 자동차 경주에도 여러 급의 대회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시속 150KM에서 버벅대는 승용차는 경주 대회에 못 들어간다. 책 역시 작가 차원에서도 아무나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글 쓰는 이 중에는 기자도 있다. 기자의 글은 상업적 글이므로 허투루 쓰는 기사도 넘쳐나며, 온라인 미디어가 많은 요즘에는 문법적으로 틀리는 글도 정말 난무한다. 문서 번역, 즉 내가 말하는 '상업 번역'도 딱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보면 되겠다. 문서 번역은 차로 말하면 그냥 승용차다. 포뮬라 1 대회에 나가는 글을 쓸 수도 없고 어차피 상업 번역을 선택했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글 수준은 승용차면 되는 것이다. 시속 150KM에서 버벅대기는 하더라도 고장 안 나고 120km만 무난하게 뽑아주면 된다. 물론 개중에는 BMW를 요하는 번역이 있을 게다.
자,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위 1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나는 원래 경력 상 수치를 좋아한다. 일반 번역가의 하루 평균 (8시간) 번역 소화량은 2,500 단어에서 3천 단어로 본다. 외국의 통계이니 영한의 경우 각별히 빠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1년의 합법적인 근로 시간은 공휴일 포함하여 52주 X 주 40시간, 즉 2,080시간이다. 2,000시간이라고 치자. 평균 번역가라면 연간 60만 단어다. 말이 평균이지 이게 최대다. 상업 번역을 하다 보면 가끔은 톡톡히 어려운 작업이 걸리고, 최상의 콘디션이 아닌 날도 있기 마련이다. 요즘 국내에선 단어당 30원까지 부르고, 많아야 60원인 듯하다. 50원으로 보자. 3천만 원이다. 여기에서 위 1번에 언급한 차이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속도와 단가로 승부를 봐야 한다. 하루에 4, 5천 단어를 해야 한다. 그래야 5, 6천은 벌 것이 아닌가? 이 정도 하려면 회사 근무 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8시간~10시간 초집중, 붙박이로 일해야 한다. 기업 업무 강도가 세다 해도 번역에 비해선 널널하다. 회사에선 업무 처리 능력 있으면 두 시간 놀아도 티 안 난다. 이쯤 되면 "상업" 번역이란 말이 무색하다. 차라리 "공장" 번역이다. 그렇다면 속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자, 평균이 3천만 원이라 치자(이건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제도적 문제라 생각함), 영어 실력 있어, 한국어 문장력 있어, 이런 사람이 과연 그 돈에 만족할까? 그러면 속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영어 독해력이 뛰어난 것이 우선이다. 빨리 이해해야 빨리 쓰지 않겠는가? 공장 번역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부분이 아는 단어임에도, 더 좋은 단어를 찾는 데 소비하는 검색 시간이다(오죽 검색을 많이 하면 이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 INTELLIWEB을 변역가에겐 최고의 툴이라 하겠는가?). 자, 그렇다면 강도 높은 노동에서 3천만 원의 굴레를 벗어나는 두 번째 방법은 단가를 80원에서 100원으로 올려 받는 것이다. 이 부분에 가야 품질이고 뭐고 따질 만하다. 그리고 이 부분은 번역 부문에 관한 상당한 기본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할 생각이다.
위의 수치, 즉 수입과 일 평균 번역 단어 등에 대한 근거로 삼을 자료도 추후 싣고 문서 번역 업계에서의 품질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PS:
면책조항: 사람을 수입으로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꼭 BMW만 탄다고 대수가 아니라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Tico의 영역도 분명히 존재하며 "공장 번역가"로서의 노하우를 공유할 뿐이다. 이 글들은 엄격한 의미에서는 "상업 번역"이 아닌 "비상업적 번역"을 그것도 "공장 번역가"가 작성하는 것이므로, 이것저것 섬세하게 문장력 발휘하면서 쓸 여유를 가지지 못한 점 죄송하기도 하다. 역시 "편협"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도한 바가 아님을 미리 양해 구하며, 단지 논하고자 하는 부분만 표현하는 것이므로 증권회사의 이른바 "Insight", 아니면 "찌라시"(그게 그거지만)로 읽으시고 취하실 것만 취하시되, 거슬리시는 것은 버리시라.
사실 검토도 안 하고 올려 죄송하다. 그래도 이따금 쓴 글 되돌아 보고 눈에 띄는 게 있으면 고치기도 한다. 다만 나무위키처럼 지우지 못할 따름이다. 공장 품질이다. 친구와 맥락만 읽어주시면 된다.
PS2: 구글 블로거에 올리려고 손봤다. 역시 비문 득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