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일기 3월호(3) - 쌍것들

2부에서는 이야기가 좀 샜다.다시 3월호 작업물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가지 실사례를 적어본다.3월 중 두 건을 요청받았다. 대략 70-80만원 되는 작업이었는데 우습게도 두 건 모두 이미 번역되었던 문건을 재작업하는 건이었다. 하나는 지난 몇 차례 글에서 거론했던 굴지 IT 기업의 신제품 문건이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11월에 사고가 발생한 후, 줄곧 내가 잡아왔는데 다른 번역가한테 갔다. (이거 절대 깔때기 아니다). 사실 이 문서는 마케팅 문건임에도 특이하게도 난이도가 높았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서버 상품이다 보니 언어가 녹녹하지 않았다. 클라우드 서버 솔루션인데 사실 단어는 하나도 어려운 것이 없었으나 원문의 구성상 한국어로 번역하기가 참 난해해서 생각한 것보다 오래 걸렸다. 사실 어느 번역 건이고 쉬운 건 드물다. 다른 번역가가 왜 번역이 아닌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될 정도의 난이도였고 결국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서 또 한 차례 까이고 다시 나한테 왔다.

내가 이 번역회사를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깠는데 여기 글로벌 에이전시의 위상에는 턱도 없이 짜게 구는 회사이다. 아무튼 연말에 잠깐 나에게 왔다가 다시 싸구려 번역가에게 돌아갔다가 또 까였으니 나한테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 회사 정말 밉다. 아무튼 이 번역건 구제해줬으니 당분간은 열심히 돌아오리라. 실제로 이후 같은 제품의 동영상 자막 건이 계속 들어와서 돈 1,000달러 추가로 번 것 같다. 사실 저가 수주의 폐해다. 아마 잘 받아야 내가 고수하는 단가의 한 60% 받을 것이다. 이렇듯 저가 수주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싼 게 비지떡이라고 실력 미달의 번역가인 경우이겠고, 둘째는 급격하게 무너지는 시장 속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단가 낮춘 상황에서 난이도 높은 번역이 들어와서 시간에 쫓기다 보니(단가가 낮으면 더 많은 작업을 해야 하므로) 허투루 작업한 것이겠다. 공장 번역에 종사하다 보면 무슨 연유에선지 일시에 작업이 몰리는 경우가 많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프리랜서란 작업이 내 맘대로 일하지만, 일이 내 맘대로 들어오지는 않으므로 무리하게 받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자 그러면 저질 번역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간단히 설명해 보자. 사실 번역 작업에서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부분은 아는 단어임에도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검색해야 하는 경우이다. 사실 모르는 단어 찾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흔히 저질 번역물을 볼 때 가장 드러나는 것이 문구를 검색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어로 표현이 잘 안 될 때나 전문 용어여서 내용 자체가 난감한 경우에는 구를 잘 검색해야 한다. 내가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으면(실제 그럴 때 있다) 구를 검색해야 한다(나는 주로 영어 한국어를 잘 섞어서 구글 검색을 한다, 네이버에서 잘 안 나온다). 저질 번역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노력이 결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더 심한 경우도 있으나). 
또 다른 문제의 번역물은 감수 건으로 나한테 왔다. 주로 나한테 먼저 일감을 주는 회사인데(내가 그 회사의 Localization도 하였다). 주로 마감 시한 임박한 번역물을 나한테 보내온다(시도 때도 없이 일하는 스타일이니 마감 시한에는 적격이라서 그런 것으로 유추한다). 놀라운 건 불과 한 달 전인데도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나이 탓도 있겠으나 실은 공장 번역가는 다양한 일감을 처리하다 보니 기억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본인의 이력서에 올릴 만한 중요한 번역물을 맡으면 이를 미리 이력서에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하다. 훗날 요긴하다. 아 이거 내 이력서 포트폴리오에 넣어야겠다). 한 호주 지방 정부의 투자 유치 마케팅 문건이다. 이거 분량이 꽤 되는데 나한텐 오퍼도 없었다. 물량이 꽤 되니 다른 번역가 쓰는 모양이다. 고객 불만이 접수되었고, 다시 한 차례 감수자가 손봐서 보냈는데 역시 "빠꾸" 먹었다. 나보고 revision (수정) 해달란다. 사실 처음엔 번역 건인 듯이 단어 수를 와장창 줄이고 번역 요율을 적용했기에 모르고 온라인에서 번역물을 수락했다. 그런데 열어보니 1만 3천 단어가 넘었다. 젠장 잡 오더에는 4천인가 그랬는데... 납품 기한이 한 5일 됐는데, 마침 4-5만 단어 건 작업하며 버벅대다가 10시간 전에야 비로소 파일 열어봤는데... 이런... 더 큰 문제는 이게 두 번이나 손을 거쳤던 것이었다. 번역물과 고객 코멘트를 읽어보니 고객 참 성격 좋았다. 호주 사람들 요즘 잘 나가서 옛날 미국 사람들처럼 성격 좋다. 아무튼... 이거 일감을 보니 revision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고 PM에게 연락해 이건 거의 Rewrite 수준이라고 말하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나마 이 번역회사 나름 fair한 정신을 갖고 있어서 일단 가격 두 배로 올렸다 (솔직히 풀 번역료는 못 받았으나, 나름 판돈이 꽤 커졌다). 파일을 작업하다 보니 여러 명의 번역가가 나눠서 한 게 틀림없다. 제법 품질 나오는 부분도 있었으나 consistency 개무시, 특히 앞 부분은 저질(구글 번역기 애용자인듯)이었다. 아무튼 이럭저럭 시간당 단가에서는 밑졌으나 나도 파일을 뒤늦게 열어본 지라 더 달라고 하기는 미안했다. 하지만 이거 나도 밑지고 하는 것임을 밝혀뒀다. 사실 pm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사고 난 건을 맡을 때는 각인시켜 놔야 한다. 번역가에겐 최고의 마케팅 기회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이 회사의 온라인 캣툴이 문제였다. 태그가 꽤 있었는데 여기 온라인 툴 상당히 부족하다. Matecat이다. 가뜩이나 시간당 임금 밑질 터인데 도무지 이걸로 처리하다가는 나만 피보게 생겼다. 전에 봤던 파일 다운로드를 찾아 익스포트해봤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으나 괜히 내 맘대로 파일 내리고 올리기 그래서 그냥 온라인으로 작업했지만, 이번엔 1만 3천 단어를 이 툴로 작업하려니 끔찍했다. 아무튼 파일을 내려 smartcat으로 임포트해보니 말끔하게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이메일 썼다. 
The online tool is causing me a huge grief due to the software bugs as can be seen from the video capture I made (see attached).  The tool simply is not fit for a job of this magnitude unfortunately for Korean at least. I can get this done much faster working with a downloaded xliff file.  I hope we can do this with xliff file on my cat tool.  I am also attaching the export of the translated file (I think I am twice faster using this method).  I am very sure you will be able to import this file to the MateCat. Can you check and advise?
 
가뜩이나 시한 넘긴 문제 번역물이어서인지 이 PM 즉각 TMX 파일까지 보내왔다. 
아마 시간을 최소 30%는 줄였을 것이다(일정 부분은 상태가 그나마 양호하였으므로). 20 시간 걸릴 것을 14시간 정도에 마친 것으로 기억한다. 분량이 많으면 스피드는 떨어진다. 이렇듯 캣툴이 중요함을 알리기 위해서 이 내용을 여기에 올리는 것이다. 
팁 하나 들어간다. pm과의 커뮤니케이션 중요하다. 선진국 에이전시와의 경우, 갑질 일반적으로 안 한다. 그러니 일감 주는 대로 받지 말고 받을 돈 다 받아야 한다, 선진국 에이전시들 갑질해야 요율 깎자는 것이고 그나마도 거의 그런 말 안 하고 그냥 번역가 바꿔버린다. 사실 가격 깎자는 번역회사, 즉 맨 위에 언급한 회사, 세계적으로 물의 빚은 영상 번역회사 등이지 번역 단가 깎자는 회사 치고 변변한 회사 별로 없다. 국내 번역 카페 들어가 보면 갑질하는 번역회사들 많은 것 같다. 국가가 온통 갑질 천국이니  사실 그대로 번역가 바꿔 버리는 에이전시가 낫다. 번역가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다니던 회사에서 월금 20, 30% 깎아도 다닐 것인가(일부 노조처럼 그것이 과한 금액이 아니었다면). 다른 데 알아보는 것이 낫다. 물론 시장 경쟁이니만큼 실업률 높은 곳(한국, 유럽)에서 번역하는 인구가 늘기는 했으나 그것도 정도껏이지... 참고로 요즘 재벌 "쌍것들"하는 꼴 보면 우습지도 않다. 이놈의 끝을 모르고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는 갑질의 원조는 아마도 그 "쌍것들"일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극우파가 되어 버린 어떤 유명 작가의 글이 기억 난다. 양반보다 양반 집 개가 더 무섭다고. 재벌 3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이지 갑질이라기보다 "쌍것"이란 생각이 든다. 욕하지도 말고 경멸하자. 걔네들 욕 먹어봤자 오래 산다. 그냥 하는 말이다. 어제 오랜 만에 "그날 바다"인가 관람하러 나갔다가 이멜 알람 꺼놓는 바람에 젠장 60만원 짜리 일감 놓쳐서 열뿔나기는 했으나... 김어준이 양반이다. 요즘 김어준 건드리려고 염병들 떨고 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튼, 외국 에이전시와 거래하는 번역가라면 요구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pm들도 좋은 의견은 잘 받아들인다. 아직 이 부문에서는 우리가 선진국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 우리가 지난 1, 2년 사이 봐왔던 "을질"이라고 해야 하나? 알아서 기는 을의 자세에도 일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니 "쌍것" 취급해버리자. 오늘은 칼럼 쓰는 기분이다.
방전... 쩝.
PS: 추가로 내가 좋아하는 인물 하나 또 추천한다. 황심소(황상민 교수) 내용 좋다. 진중권을 능가하는 모두까기, 이 양반 참으로 토크 스타일이나 룩 앤 필 적응하기 쉽지 않으나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통찰력을 제시하신다. 오디오, 비디오 다 so so..이지만 내용 정말 좋다. 김어준은 둘째치고 이 분이 손석희 씨의 외모와 목소리를 가졌다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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