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FACE... 번역 감수의 원칙, 초벌 번역 금지, 그리고 가끔 거저 먹어도 된다.



어제 올린 코미디 같은 QC의 건과 감수에 관한 글을 결부해 좀 더 해부해볼까 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지루할 수 있겠으나 아래에 번역가들이 알아야 할 팁이 제법 실하다고 생각한다.번역가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사항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나름 블로그글로는 많이 신경 쓰고 쓰는 글이다. 이건 감수자한테 화가 나서도 아니고 깔때기 아니다. 개인적으로 실소를 금하지 못했을 뿐이까. 약간의 회계지식이 담겨 있어 좀 이해하기 쉽지는 않을 거다.   
내가 펀드회사에 제안서 들어갈 번역이라고 해서 작성한 건데 고쳐야 한다고 온 내용이다. 앞에 올렸지만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다시 올린다. 
감수자 지적 1
There are couple of words that I changed and you might double check with a linguist.
fixed income -> 채권 -> 고정자산 (채권 means bond, so fixed income should not be translated as 채권)

처음에는 PM이 이 사람을 QC라고 칭해서 내부 사람인 줄 알았다. 아무튼 이렇게 고치면 큰일 난다고 PM에게 알리고 간단히 설명해줬다. 알았다며 그 QC는 외부 인력이란다(그럼 그렇지 이 좋은 회사 내부에 그것도 금융전문 번역회사인데 내부 직원이 그럴 리 없지).
이건 사실 전문가급이 아니라도 알아야 하는 건데... 사실 위의 두 단어는 내가 거짓말 안 보태고 1만 번 이상 번역했을 단어다. 웬만한 펀드 관련 번역물이라면 한 번 할 때 20번씩 나오고도 담을 단어이니까 말이다. 번역가한테 지식이 상당히 필요하단 생각도 들긴 하지만... 
해부해 본다. 1. FIXED INCOME 채권을 고정자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저 허황된 평. 해부해 보자들통 1: 우선 고정자산은 Fixed Asset이다. 앙?  이건 지금 알게 된 거다. 난 저 사람이 "고정수입"으로 하자고 한 줄 알았다. 더 틀렸다. 초보라면 오히려 fixed income이 왜 채권이 되나 몰라서, 고정수입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여기서 고정수입이라 함은 국채, 우량 사채 등은 가격 변동이 심하지 않으므로 금리는 낮지만 안정적으로 수익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좋아, 이거 전문용어다. 그래 난이도 좀 있다 치자.그런데 본인이 맞다고 생각한 fixed asset은 누가 봐도 고정자산이지, 고정수입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회계 용어이지만, 대차대조표의 한 항목이기도 하다. 고정자산은 land and equipment다. 경제면 좀 읽으면 안다.  이 사람 "고정 자산"이 뭔지도 모른다. 이거 난이도 1-10이면 한 2 정도로 쉽다.
들통 2: 펀드 이름에 고정자산 펀드? 동네가 틀려버렸다. 그리고 더 웃긴 건 이 사람 "채권은 영어로 bond"인 건 안다. 그런데 바로 fixed income(채권) 펀드가 바로 bond(채권)로 구성된 펀드다.  추천한 단어, 내용, 동네(맥락) 모두 완전 틀렸다. 이거 하나로 개망신이다.
감수자 지적 2
2. Equitiesequities -> 주식 -> 자산 ("equities" has a broad meaning, and 주식 is a part of equity. I believe "equities" should be translated as 자산)
회계학 개론에 나오는 거다. 대차대조표 공식이다ASSET(자산) = LIABILITIES(부채) + EQUITIES(자본)
들통 1따라서 감수자가 지적한 것처럼 EQUITIES=ASSET이 될 수 없다.그래서 Equities has a broad meaning이란 코멘트를 보면 이건 완전 벌거숭이다. 때로는 대차대조표의 개념에서 위 공식에 있는 "자본"을 "순자산"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왜냐 하면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금액이니까. 하지만 이 사람은 자산과 순자산의 차이조차 알 리 만무하다.
들통 2: "주식 is a part of equity"자, 이건 어디건사 감수자가 주워들어 본 적은 있는 것 같다. 대차대조표에서 자본 안에는 구분이 있는데 우선 주식이 있고 그해 소득이 있고, 기타 조정 항목 등이 있다. 그러나 그걸 다 합친 게 equity고 100% 주주들의 몫이다. 약간 어려워진다. 이렇게 말하자. 나한테 10만원 있는데 5만원 권 1장에 1만원 권 다섯 장이다. 그걸 대차대조표 Equity(자본) 섹션에 별도로 표기해 놓은 걸, 5만원짜리만 주식이라고 감수자는 생각하기에 용감하게 "주식은 equities의 일부"라고 말하는 거다. 게다가 이 사람은 equities를 자산(Asset)으로 알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결국 대차대조표에서 말하는 자본에 어떻게 구분해 놓았든, 자본(주주자본이 원래 정식명칭이다)은 다 주주의 몫이니 바로 "주식"="자본"이므로 "주식 is a part of equity"는 틀리는 말이다. 이건 좀 난이도 있다. 
들통 3: 동네가 완전 틀렸다 그래, 회계까지 따질 것 없다. 하지만 "자본을 자산"이라 할 거면 금융번역은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번역하다 한번 잘못 쓸 수는 있겠으나, 감수의 건에서 지적질까지 하면 이건 실수가 아니다. human erroir가 아니다)
이 문건, 펀드사 소개 문건이다. 펀드 업계에서 equities는 주식 펀드다. 대차대조표의 ASSET이 아닌 건 물론, 대차대조표의 자본도 아니다. 다른 맥락에서 쓰이는 거다. 이건 주식 펀드다. 주식 펀드인데 왜 STOCK FUND라 안 할까 갑자기 궁금해져 구글 검색했더니 맨 위에 이렇게 나온다. 더 들어갈 필요도 없다.  위키피디아:An equity fund is a type of fund that uses investors' capital to invest in stocks (equity securities). ... Equity funds are also known as stock funds. ... In many ways, equity funds are ideal investment vehicles for investors that are not as well-versed in financial investing or do not possess a large amount of capital with which to ...
동의어라 보면 되겠다. 결국엔 Equity나 Stock이나 같은 말인데 왜 한국어는 다를까 잠시 생각해 본다. 통박이다. 유구한 역사의 대차대조표 번역할 때는 Equities를 자본으로 번역했을 거다. 하위 항목으로  "주식+기타 조정항목"을 쓰다보니 "자본"이라고 썼을 것이고 맞다. 다 서양 개념이다.그런데 나중에 주식(Equities) 펀드가 생기고 나서 보니 "자본 펀드" 이렇게 번역하면 "자본 자금"이 될 터이니 말이 안 맞았을 것이다. "주식 펀드"로 번역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싶다. 지적 정보는 다 영어권에서 나오다 보니 이런 괴리가 생겼을 것으로 유추해본다.
결론: 이 사람은 단 두 개의 짧은 문장을 쓰고 금융 번역가로서 몽땅 탈탈 털렸다. 아니 탈렸다기 보다는 "자폭"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수정한 것도 틀렸고, 수정하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도 깡그리 틀렸다. 100% 틀렸다. 아무튼 나로서는 PM에게 설명해줘야 했다. 자연, 그 감수자 속어로 "병신"되는 거다. 
아무튼 감수자가 보낸 코멘트를 아마도 "일부" 붙여넣기해서 나한테 보낸 것으로 보낸다. 내가 오역했다고 생각해 욕을 바가지로 해댔을 수도 있는데 그랬으면 제 명 재촉한 꼴이 될 거다. 이 PM 나랑 4, 5년 일해왔고 거의 펀드업계의 거성이라는 회사 연차보고서 내가 번역해줬다. 내가 설명해서 보낸 건 한 7줄 정도 되나? 결국 PM이 감수자가 고친 부분 다 지우고 다시 보내왔다.  아무튼 수정분 자기가 지웠으니 마지막으로 봐 달라고 하면서 나한테 이멜 보내면서, 감수자에게 피드백 전하겠다고 했다.  이거 제안서 제출 건이라서 그래도 신경 써서 해준 건데, 보기도 싫다. 그리고 제안서 제출 건에는 내가 한 번역을 다시 영문으로 번역해 주는 백트랜슬레이션이 들어가는데 그거 고칠 거 없는데도 그 부분도 고쳤다. (팁: 정 고칠 게 없어서 미안하면 토씨라고 하나, 빨강줄 보일 정도만 고쳐라, 어차피 4백 단어면 감수비라야 파일 열고 이멜 보내는 인건비 수준이다고쳐야 한다는 강박관념 갖지 말아라, 힘들여 일한 그대! 공장 번역가여! 거저 먹는 날도 있어야지!) 교정만 해도 밑졌단 생각 든다) 약간 과장하면 파일 열고 이멜 쓰는 수준이니 쑝 보고, 다 읽지도 않았다. 내가 번역한 것도 쑝 봤다. 아무튼 "그대로 보내면 돼"라고 답 보내면서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 감수자 때문에 우리 시간 낭비만 한 꼴이서 이렇게 썼다. And yes, please do share my feedback with her.
Sorry for beating this up but both comments were so preposterous because they are both very basic terms and she doesn't even know it, which can lead to a bigger problem. Reverting back undue changes like this only introduce problems to the final quality. Again, no exaggeration on my part and this isn't an ego trip on my part whatsoever, These are two words I translated probably over 10,000 times because they would appear like 10, 20 times in a project relating to mutual funds of any decent length. It is just that I am GENUINELY horrified that this person is the gatekeeper. 

피드백 줬다고 응답 받았다. 이 감수자 금융번역은 최소한 이 PM한텐 아웃이다.이 회사 모기업이 포천 500기업이다. 회사 이름에 아예 금융번역이라고 들어가 있다. 아마 여기까지 찾아온 번역가라면 그리 맹탕은 아닐 거다. 물론 번역가 시험은 변별력이 없으니 번역 실력은 무관하지만, 아무튼 이 회사 찾아온 것만도 어느 정도 능력은 있는 거다. 자, 이 긴 글의 목적, 잘난 체 아니다. 그냥 우스운 사고였는데, 저 길지도 않은 두 문장으로 얼굴 벌개질 정도로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팁:1) 모르는 주제 번역하지 말아라. 그게 금융번역이라면, 이 글 정도는 쉽게 이해해야 한다. 금융번역에서는 아주 초초보 용어들이니까. 이거 4백 단어 감수에서 사고 난 거다. 돈 된다고 더 큰 거 했다간 돈도 못 받는다. 실제로 내가 구제한 문건에서 그런 케이스 몇 명 봤다. 물론 단어당 20원도 못 벌더라도 평소의 3, 4배 정도 시간 써서 검색할 의지가 있으면 모르겠다. 걍 돈 벌라고 오는 거 다 먹지 말아라.
2) 이른바 공장번역 "감수" 건이면, "감수"하지 말고 교정만 해라(어제 올린 글이다). 정 이상한 부분이 있고 꼭 고쳐야겠으면 검색하고 해라. 특히 이런 실수는 자기가 단어 안다고 쉽게 생각하다가 나는 실수다. 어려운 단어는 오히려 열심히 검색해서 실수 안 한다. PHRASE를 찾아라. 확실할 때 이의 제기하라. 이건 인생에도 적용된다.
이 문제의 감수자, 감수 안 하고 교정만 했어도, 그리고 검색만 했어도 이런 망신 안 당했다. 필경 자기의 실력을 과신한 사람일게다(나도 그런 측면은 있으나...ㅋㅋㅋ). 이 사람 그럴 근거 전혀 없다. 여기서 가장 두려운 것은 본인이 그걸 모른다는 거다. 새로 온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안됐다. 나로서는 올해 들어 가장 우스운 일 중 하나였으니 화낼 일도 아니다.

3) 초벌 번역 하지 말아라무식한 에이전시가 이런 단어 만들어낸다.기왕이면 이 사람이 QC인지 감수자인지 확실히 물어보진 않았다. 전형적인 의미에서 QC는 감수 후 단계이다. 즉 두 사람을 거친 것인데 외부 인력이라고 하는 걸 봐선 감수자일 수도 있다. 특히 경력이 짧은 번역가일수록 "감수"라는 게 일단은 그럴싸하게 들리는데 그거 몰라서 하는 소리다. 초벌 번역가란 황당한 얘기까지 나오는 게 국내 번역게다. 초벌 번역가, 무조건 하지 말아라. 특히 국내 번역회사가 초벌 번역가를 구한다는 건 정말 개념 없는 얘기다. 개념 없는 번역회사, 이걸 번역회사라고 봐야 하나? 이거 자본을 자산으로 "확신"하는 사람이 금융번역 하는 꼴이다. 초벌 번역 해보지도 않았지만, 너털 웃음 난다. 걍 구글 번역기 돌려! 아마 요즘 돌릴지 모르겠다. 추가팁: 최저임금 위반은 물론이고 이 정도면 피싱에 가깝다. 이 글 보다가 초벌 번역 하려거든 차라리 내 계좌에 돈 넣어라.

이렇게 보면 된다. 야구에선 선발 투수가 중요하다. 앞에서 말아 먹으면 뒤에 마무리 필요없다. 즉 9회에 타자 셋만 잡으면 된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번역 공장 퀄리티 나오고 교정만 보면 된다. 현명한 에이전시에서는 선발투수 중시한다. 사실 내가 에이전시 많이 설득도 했다. 번역비 비싸니 앞에서 싼 번역가 주고 값싼 프루핑을 오히려 비싼 번역가에게 주려 하는 경향도 있다. 이게 국내 번역회사라면 3류다. "초벌번역" 하지 말아라.근데 한국어 앞에서 말아 먹으면 대책 없다는 것, 초기에 파악하고 최대 5백 단어, 그것도 주 고객 급할 때 빼곤 감수 안 한다. 
4) 준팁이다. 괜찮은 에이전시 들어가면 지식을 쌓는 좋은 방법이 있다. 선발투수가 괜찮을 테니 공장번역이 어떤 건지 배울 수 있다. 특히 전문 분야일 경우, 프루핑, 교정만 하다 보면 용어 배우게 된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FLUENCY 따지지 말아라. 번역투 아닌 글 나 못 봤다. 내가 감수를 덜하긴 "잘하네" 이런 사람 딱 셋 봤다. 다 번역투다. 토씨 하나 안 빼먹는 사람도 있다. 이전 글에 언급했던 김&장의 번역가, 그리고 업계에서 두 명 이렇게 셋이다. 다 번역한 것 보인다. 번데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봤다.감수한답시고 한글 멋지게 쓰겠다고 함부로 원문 건드리지 말아라.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서 공장 번역가의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
후, 너무 많이 썼다. 하지만 두 문장에 사람 이렇게 망가지면 안 되잖아... 그 안에 번역 입문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서 길게 썼다. 다시 말하지만, 감수자 욕하는 것이 목적 아니다. 여러분은 이런 실수하시지 말라는 이야기다. 내가 자기비하하는 투로 공장번역이라고 말하지만, 번역 의외로 어렵다.

PS: 그래도 혹시 내가 보낸 이멜이 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토를 단다. 내가 그 사람의 전문분야는 모르지만, 최소한 금융번역에선 번데기(번역가의 기레기 버전)다. 이번 일로 본인이 일을 잃지는 않겠으나 받아들이기에 따라 좋은 경험이 됐을 거다. 알아야 하는 사항이니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렇다. 이 에이전시 중요한 문건 많이 한다. 국내 기금에 세계 굴지 펀드회사들이 위탁운용 제안서 제출하는데 주로 여기서 다한다. 한번 제안서 제출 시기 오면 보통 한 회사에 2만 단어다. 두세 회사 한번에 하고 다른 번역가도 있다. 회사 너댓은 들어갈 테니 나눠서 해야 한다. 그 중요한 문건 사흘 안에 2만 단어 뿜어내는 거 예사다. 아니 예사가 아니라 매번 그렇다.  거기에 그 문제의 채권펀드, 주식펀드 수백 번 나온다. 그보다 훨씬 불가사의한 단어 많다. HIGH-WATERMARK 아는 사람 있나? 여러 번 번역해도 이게 맞나 지금 나도 찾아본다. 한국어는 더 기억 안 난다(여기서 CONCORDANCE를 쓰는 거다, 여러 단어로 번역되니까). 그나마 쉽다. 이번 감수건은 4백 단어다. 이 사람이 번역가든, 감수자로든 이런 큰 프로젝트 개입되면 번역가, 감수자는 물론 펀드회사, 펀드회사 고객까지 여러 명 피곤해진다. 납기야 어떻게든 맞출 수밖에 없으니, 그 퀄리티는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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